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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리

설악산 명승, 대승폭포, 십이선녀탕, 수렴동, 구곡담, 용아장성, 공룡능선, 만경대

by 고산자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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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명승에 얽힌 이야기들

높이 1708m의 설악산 국립공원은 명산이다. 케이블카만 즐길 수도 있지만, 등산코스도 다양하다. 날씨가 좋은 날엔 종주를 하면 설악산의 경치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백담사, 신흥사, 봉정암 등 유서깊은 절과 암자도 있다. 이 포스팅에선 대승폭포, 십이선녀탕, 수렴동, 구곡담, 용아장성, 공룡능선, 만경대 등 설악산 명승에 얽힌 이야기들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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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名勝)은 ‘경치가 좋은 곳으로서 역사적 경관적 학술적 가치가 큰 곳’을 말하는데,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지정되고 보호받는다. 우리나라는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사적 및 천연기념물과 함께 명승을 국가지정문화재인 기념물로 지정하였다. 이에 따라 명승은 현재 전국적으로 110여 개가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설악산에는 지난 2013년 10여 곳이 명승으로 지정된 바 있다. 그 중 다섯 군데가 인제군 권역의 내설악 영역에 위치해있다.

 

인제군 영역의 설악산 명승 목록

지정번호 이름 핵심 콘텐츠 비고
천연기념물
제171호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희귀 동식물, 자연경관 국내 최대의
자연유산 보고
명승 제97호 설악산 대승폭포 폭포 우리나라 3대폭포
명승 제98호 설악산 십이선녀탕 일원 탕, 폭포 지질학적 특성
명승 제99호 설악산 수렴동, 구곡담 계곡 일원 못, 소, 담 지질학적 특성
명승 제102호 설악산 용아장성 기암절벽 용의 이빨 닮은 바위 능선
명승 제103호 설악산 공룡능선 분수령, 기암절벽 설악의 등뼈
명승 제104호 설악산 내설악 만경대 내설악 최고 전망대 설악의 3대 만경대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칭송받는 공간이 처음부터 경승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 상태의 공간은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특정 인물이나 계기에 의해 서서히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우리 역사에서 명승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운 경관과 그것을 향유하며 창작해내는 문예나 회화 등에 의해 복합적으로 문화유산이 된다.

 

매월당 김시습과 삼연 김창흡의 흔적 남은 설악산

그렇다면 설악산 명승은 우리 역사에서 어떻게 탄생하였을까? 설악에 기댄 역사 인물 계보는 자장율사~김시습~김창흡~한용운으로 이어진다. 서기 643년. 신라 왕족 진골 출신 자장율사는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정암 사리탑에 봉안했다. 조선 초기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오세암에 머물렀다.

 

이후 17세기 삼연 김창흡 (三淵 金昌翕, 1653-1722)이 이곳에 약 9년간 은거하며 남긴 글로 인해 조선 문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다. 김창흡은 숙종 때 기사환국으로 전남 영암에 유배당한 부친 김수항이 1678년 강원도 철원으로 유배지를 옮기면서 이보다 한 달 앞서 설악산을 처음 여행하게 된다.

 

이때 그는 한계산, 수렴동, 백담계곡 등을 둘러보며 이곳에 터를 잡고 살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1705년(숙종 31) 그가 53년 되던 해, 설악산에 숨어 살기로 결심한다. 그는 설악산에 사는 동안 「설악일기」(1705) 등 세 편의 유산기(遊山記)를 남긴다.

 

그에게 설악산은 장쾌한 폭포와 깊고 아름다운 계곡이 자연 경관적 특징이었으며, 무엇보다 그가 존경하던 매월당의 흔적이 남은 곳이었다. 김창흡은 김시습이 남긴 강원도 여행 기록을 통해 설악산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선비들의 필독서, 김창흡의 설악일기

한편 17세기에는 조선에서 유산기라는 기행문 형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중국 명나라 문인들의 산수유람과 그 감흥을 글로 남기는 행위가 조선 문인들에게도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되었다.

 

대부분 문인들은 그 목적으로 금강산, 지리산 등을 찾았으나 김창흡은 설악산에서 후대 문인들에게 여행안내서처럼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던 글을 남겼다. 그의 글 중 「설악일기」는 날짜와 날씨를 기록한 뒤 여정, 행동 등을 사실적으로 정리했다. 따라서 독자들은 저자와 함께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후 많은 조선 문인들이 설악산을 찾았다. 그들은 수려한 자연경관을 즐기기 위해서, 그리고 김시습과 김창흡의 흔적을 답습하기 위해 관광, 유람, 경유 등의 목적으로 설악산에 머물러 기록으로 남겼다. 후대 사람들은 백담계곡과 수렴동 일대를 둘러보며 영시암 터에서 김창흡을 추억했고 오세암 터에서는 김시습의 절의를 생각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존경 받는 인물들이 거쳐 간 곳을 후학들이 계속 탐방하고 기록으로 남김으로서 설악산은 그들 사이에서 의미 있는 장소가 되었다. 조선 후기 그리고 백담사에서 만해 한용운 시인이 머리를 깎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설악산을 여행한 이들은 폭포, 계곡, 연못, 바위, 기암절벽, 동해바다 전망대 등의 풍경과 각자의 감흥을 글과 그림 등으로 표현하였고, 이는 지금 우리의 복합유산인 설악산 ‘명승’의 탄생 근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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