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을 비롯해 신석기·청동기 시대 유적이 곳곳에 있어요. 또 고구려 도읍인 평양과 고려 도읍인 개성 덕분에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재도 아주 많아요. 북한의 문화 유산을 살펴보죠.
우리에게도 귀중한 북한 소재 문화유산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
평양시 상원군 흑우리(검은 모루 마을)에 있는 상원 검은 모루 동굴 유적(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27호)은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에요.
이곳에서는 석기, 그리고 갈색곰·원숭이·코끼리·코뿔소·물소 등의 동물뼈가 발견되었어요. 보통 40만~70만 년 전의 유적으로 보고 있는데, 북한의 학자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연대를 측정해 100만 년 전 유적임을 밝혀내기도 했어요.
낙동강·대동강·두만강 하류에서 발달한 신석기 문화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강 하구나 바다와 접한 곳에서 많이 살았어요. 북한의 신석기 시대 유적은 서부에서는 대동강 하류, 동부에서는 두만강 하류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어요. 이 중에서도 평안남도 온천군 운하리의 궁산 유적은 광복 후 북한에서 처음 발굴된 신석기시대 조개무지 유적이에요. 이곳에서는 기원전 5천~7천 년 전에 대동강 유역에 살던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집터와 수백 점의 빗살무늬토기, 그리고 뿔괭이·활촉·그물추 등도 나왔어요.
한반도 고인돌 중 가장 멋진 은율 관산리 고인돌
황해남도 은율군 바닷가 언덕에 있는 관산리 고인돌(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84호)은 한반도에서 가장 멋진 고인돌로 꼽히고 있어요. 질 좋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고인돌은 높이 2.15m로서 사람 키보다 훨씬 커요. 덮개돌은 길이 8.75m, 너비 4.5m, 무게는 40톤이나 되지요. 또 황해남도 안악군 노암리의 고인돌은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제일 큰 고인돌로 알려져 있었어요. 하지만 몇 년 전 발견된 장리 2호 2 고인돌이 노암리 고인돌보다 70cm나 더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구려 고분군
고구려 미술은 고분벽화가 대표적이에요. 고분벽화는 무덤 안의 천장이나 벽에 그려놓은 그림을 말하는데요. 고구려 고분벽화는 중국의 지린성 지안현 지역과 북한의 평양·안악·남포·순천·대동 등 고구려 중심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지요. 지금까지 발굴된 고구려 벽화 무덤은 모두 90여 기예요.
안악 3호 무덤(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67호) 벽화는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며, 덕흥리 벽화 무덤(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156호)에서는 귀족 부인의 나들이 모습을 알 수 있어요.
강서대묘(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3호)는 사신도가 아주 유명하지요. 사신은 네 방향을 맡은 신으로서, 동쪽의 청룡, 서쪽의 백호, 남쪽의 주작, 북쪽의 현무를 말해요. 이 외에도 깃이 달린 모자를 쓰고 말을 달리고 있는 씩씩한 고구려 무사의 모습이 그려진 쌍영총(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39호), 사냥 그림이 그려진 수렵총(북한 국보 문화 13호) 등이 있어요.
그리고 북한은 아니지만, 우리의 옛 땅인 중국의 지린성 지안현에는 무용수들이 춤추는 모습의 무용총, 씨름하는 그림으로 유명한 각저총 등이 있답니다. 이렇듯 고구려 사람들의 사상과 생활 모습이 담긴 고구려 고분 벽화는 2004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었어요.
고구려 왕권을 상징하는 삼족오
고구려 왕권의 상징인 삼족오는 상상 속의 ‘세 발 달린 태양 새’를 말해요. 삼족오는 고구려 쌍영총·무용총·각저총 등 대부분의 고분벽화에 등장하지요. 삼족오는 고구려 뿐 아니라 중국·일본 등 고대 동북아시아 지역 여러 나라에서도 볼 수 있지만, 삼족오를 가장 다양하고 화려하게 활용한 국가는 고구려예요.
고구려 장수왕이 도읍을 옮길 때 쌓은 평양성
평양성(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1호)은 427년 고구려가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길 때 쌓은 성이에요. 초기에는 왕궁인 안학궁의 뒤편에 산성을 쌓고, 전쟁 때는 이곳으로 옮겨 갔어요. 그러다 평지에도 새로운 성을 쌓았는데, 지금 평양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평양성이에요. 즉 평양성은 고구려 사람들이 평지성과 산성의 장점을 종합적으로 잘 살려 생각해낸 성이에요. 이렇듯 평양성은 우리나라 최초로 왕궁·산성·민가가 모두 성 안에 있는 성곽이었는데, 이러한 형태는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까지도 이어졌지요.
고구려 시조 주몽이 잠들어 있는 동명성왕 릉
평양에는 고구려 시조 주몽의 무덤인 동명성왕 릉(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36호)이 있어요. 원래 국내성에 있었으나 427년 고구려가 도읍을 평양으로 옮길 때 함께 이전했다고 해요. 동명왕릉 뒤쪽으로 10여 기의 고구려 무덤이 있고, 앞쪽에는 동명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지었다는 정릉사(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173호)가 있어요.
평양성 6대문 중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대동문
대동강 기슭에 있는 대동문(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4호)은 6세기 중엽 고구려의 도읍이었던 평양성 내성의 동문으로 처음 세워졌어요. 전체 높이 19m로 평양성의 6대문 중에 가장 중요하고 규모가 큰 성문이지요. 대동문은 조선 시대에는 시각을 알리는 종루 역할을 겸하였어요. 몇 차례 고쳐지었지만, 고려 시대의 건축 기술을 이어받은 조선 초기의 형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성문 건축물로 꼽히지요.
평양성의 서문으로 건립한 보통문
평양성의 보통문(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3호)은 6세기 중엽 고구려가 평양성을 쌓을 때 세운 성의 서문이에요. 현재 건물은 조선 시대인 1473년에 새로 지었지요. 이 문은 평양성 북서쪽 방향으로 통하는 관문으로 국방과 교통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 시대부터 고려·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요하게 여겼어요. 따라서 고구려의 건축 양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답니다.
북한에 있는 2개의 진흥왕 순수비
왕이 나라를 시찰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남긴 비석을 순수비라고 해요. 현재 한반도에서 발견된 진흥왕 순수비는 북한산비·창녕비·황초령비·마운령비 이렇게 모두 4개예요.
이 가운데 황초령비와 마운령비는 북한의 함경남도에 있어요. 황초령비(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110호)는 진흥왕 순수비 중 제일 먼저 발견된 비석으로, 조선 후기에 추사 김정희가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어요. 마운령비(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111호)는 일제강점기인 1929년 현지 문화재를 조사하던 문인이자 사학자인 최남선에 의하여 알려졌어요. 지금은 함흥본궁(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107호)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지요. 이 비석들은 당시 신라의 국경·관직·제도·지명 등을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예요.
만수산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고려 태조 왕건 왕릉
고려 태조 왕건 왕릉(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179호)은 개성 송악산의 줄기가 뻗어 내려온 만수산 산등성이에 자리 잡고 있어요. 송악의 호족 왕륭의 아들로 태어난 왕건은 궁예의 부하로 있으면서 견훤을 무찌르고 백성들을 잘 보살펴 백성의 신망을 얻었어요. 나중에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운 뒤, 도읍을 송악으로 옮기고 개경(지금의 개성)이라 했지요. 나중에 신라와 후백제를 정복하고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답니다.
992년 건립한 고려 성균관은 고려의 ‘국립대학’
개성시 방직동에 위치한 고려 성균관은 고려 시대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교육 기관이에요. 992년 고려는 국가 관리를 양성하기 위해 국자감을 설립했어요. 이 국자감은 1298년에 성균감으로, 1308년에 성균관으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북한은 이곳에 고려박물관을 건립해 개성 주변에서 발굴된 고려 유물들을 모아 놓았어요. 야외에는 헌화사 칠층 석탑(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139호), 헌화사비(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151호) 등이 있어요. 이밖에 성균관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은행나무 등도 천연기념물도 지정되어 있어요.
고려의 뛰어난 건축술과 천문학 수준 보여주는 개성 첨성대
개성 첨성대(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131호)는 고려 궁터인 만월대 서쪽에 있는 고려 시대의 천문대예요. 고려 초 이곳에 궁을 지으면서 세운 것으로 짐작하고 있지요. 지금은 화강석을 다듬어 만든 축대 부분만 남아 있어요. 축대의 높이는 2.8m이며, 한 변의 길이는 2.6m예요. 개성 첨성대는 고려 시대의 건축술과 천문학의 뛰어난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지요.
한양 숭례문의 모델이 되었던 개성 남대문
개성시 북안동에 있는 개성 남대문(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124호)은 조선 시대의 성문이에요. 1393년에 처음 완성하였고, 1900년에 크게 고쳐지었으나 6·25전쟁 때 파괴되어서 1954년에 복원하였어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선 뒤 한양에 성을 쌓고 숭례문(남대문)을 지을 때 개성 남대문을 본떠 지은 것이라고 해요.
서산대사가 의병 일으킨 묘향산 보현사
평안북도 묘향산에 있는 보현사(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40호)는 968년 세워진 고려 시대의 사찰이에요. 아름다운 주변 경치와 잘 어우러졌을 뿐만 아니라 건축술도 뛰어나 한국 5대 사찰의 하나로 꼽히지요. 임진왜란 때 휴정(서산 대사) 스님이 이곳에서 의병을 일으킨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지요. 1606년부터 22년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기도 했어요.
절 안에는 고려 석탑으로서는 층수가 가장 많으면서도 형태도 완전한 8각 13층탑(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144호)을 비롯해 보현사비(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149호), 보현사 9층탑(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7호) 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어요.
원나라 세력을 물리친 공민왕의 무덤
개성 개풍군 해선리에 있는 공민왕릉(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123호)은 고려 제31대 왕인 공민왕과 왕비(노국 공주)가 묻혀 있는 무덤이에요. 공민왕은 당시 유행하던 몽골식 풍습을 모두 버리고 고려의 풍습을 되살리는 데 앞장선 임금이에요. 또 원나라가 철령 이북 땅의 화주(지금의 영흥)를 차지한 후 설치했던 쌍성총관부를 공격해서 폐지하는 등 100년 간 몽골에 빼앗겼던 영토를 되찾기도 했어요.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목숨을 잃은 선죽교
선죽교(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159호)는 개성 남대문에서 동쪽으로 약 1km 떨어진 개울에 있는 자그마한 돌다리예요. 이 다리는 1392년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태종)에게 죽임을 당한 장소로 유명하지요. 지금도 정몽주의 핏자국이라 전해오는 불그스름한 자국이 남아 있어요.
그 당시에는 돌난간이 없었는데, 1780년 정몽주의 후손들이 난간을 설치해 사람들의 통행을 막은 대신, 그 옆에 난간이 없는 새 다리를 세워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했어요. 선죽교 근처에는 정몽주를 기리기 위해 세운 숭양서원(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128호)이 있어요.
‘함흥차사’라는 말의 유래가 된 함흥본궁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는 함흥본궁(북한 국보 문화 유물 제107호)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임금이 된 뒤 자신의 조상들이 살던 집터에 세운 사당이에요. 이성계가 임금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 여기서 머물며 본궁이라 불렀지요.
함흥차사라는 사자성어 아시죠? 심부름을 가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요.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주고 이곳에 있을 때 태종이 보낸 차사(임금이 중요한 임무를 위하여 파견한 관리)를 죽이거나 가두어 돌려보내지 아니하였던 데서 유래했어요. 그러나 학자들은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요. 연구에 따르면 당시 이성계에게 죽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네요.
백수의 왕 사자로 잡귀를 쫓는 북청 사자놀음
북청 사자놀음은 함경남도 북청군 일대에서 정월 대보름에 사자탈을 쓰고 놀던 민속놀이예요. 놀이의 목적은 백수의 왕인 사자로 잡귀를 쫓아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것이에요.
함경남도의 북청·함주·정평·영흥·홍원, 함경북도의 경성·명천·무산·종성·경원 등지에서 사자놀음을 많이 즐겼는데, 이 중에서도 북청의 사자놀음이 가장 유명해 함경도 사자놀음을 대표하고 있어요.
해서지방 탈춤 중 가장 유명한 봉산탈춤
봉산탈춤은 황해도 봉산 지방에 전승되어 오는 가면극이에요. 예부터 해서지방(황해도) 각 고을의 5일장이 서는 장터에서는 탈춤놀이가 벌어졌는데, 그중에서도 봉산이 가장 성행하였어요. 한반도 남북을 잇는 큰길에 있는 봉산은 나라의 사신을 영접하는 행사가 잦았고, 또 다른 지방의 농산물이 모여드는 중심지였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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